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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해군사관학교 (上)





1. 강화도 해군사관학교 창설 배경

해금정책으로 일관해 온 금단의땅 조선에 양포와 증기기관으로 무장한 이양선의 출현은 조선역사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1866년 프랑스함대의 강화도 점령, 1867년 남연군 묘도굴사건, 1871년 미국 극동함대의 강화도 점령은 모두 증기선에 대포를 장착한 양이들의 해양침입 사건이었다. 이에 대항했던 조선의 주무기는 풍력과 인력에 의존했던 범선과 사정거리 3-4백보에 불과했던 대완구포와 사정거리 800보의 총통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구식 무기체제로는 최신의 군함과 대포로 무장한 열강의 무력적 위력에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한편, 일본은 1867년 근대 해군을 발족한 이후 꾸준히 군함확보에 주력하면서 그 여세를 몰아 1876년 조선에서 운양호사건을 일으켜 조선을 강제 개항시켰다. 이때 민영환은“우리나라 병력은 단지 육전에는 사용할 수 있어도 해전에는 사용할 수 없으니 만일 해전이 있을 경우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하여 관념적 조선의 상국(上國)인 청국에 해양방위를 위임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는 조선이 근대식 해양방위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상당기간의 노력과 예산이 필요한데, 열강의 해양도발은 조선에 그러한 여유를 주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은 청국에 해양방위를 위임시키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국가경제를 부흥시킨 후 그 여력으로 근대 해군을 창설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운양호 사건 처리에 나타난 청국의 태도는 “이제 일본이 조선과 외교관계를 맺으려 하는데 조선은 스스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우리 중국 해군이 중국의 연안과 각 항구를 모두 방비할 수 없는 판국에 조선까지 돌볼 여력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조선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1882년 7월에 발생한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국은 일본에 의해서 개항된 조선에서 일본에 열세한 군사침략정책을 만회하려 하였다. 그 조치의 일환으로 조선의 군사제도를 청국식으로 개혁하려 하였다. 청국이 조선에서 군사력을 강화시키려하자 일본은 1884년 조선의 급진개화파를 조정, 한반도에서 청국세력을 축출하고자 하였다.

일본군은 원세개가 지휘하는 청군에게 패하게 되었다. 갑신정변에서 군사적 위력을 발휘한 청국은 즉시 육군지배정책에서 해군지배정책으로 대조선정책을 전환하였다. 이렇게 청의 조선침략정책이 육군에서 해군으로 전환한 것은“한반도에서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발생할 경우 봉천에 있는 청나라 육군이 육로를 통해 조선의 한성에 이르는 시간이 20여일이나 걸리지만, 산해관에 있는 해군이 황해를 건너 인천에 이르는 시간은 12- 13시간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 군함이 사세보를 출항하여 인천에 도착하는 시간은 40여 시간이 걸리므로 해군을 이용한 조선 침략정책이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편 청국의 대조선 군사정책의 변화를 간파한 일본은 즉시 가상 적국을 러시아에서 청국으로 변경하고 청국해군과 결전할 경우 해군의 인원과 함정수에서는 열세하나 장비와 훈련 그리고 해군의 사기면에서 일본이 우세하다는 전술판단에 따라 청국과 일전할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서 조선은 청국의 직예총독 이홍장과 북양함대 사령관 정여창의 권고에 따라 청국의 북양함대를 모델로 조선의 근대 해군을 창설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2. 조선의 근대해군 창설과정

1880년대를 고비로 조선의 지식인들은 근대 해군창설의 필요성과 그 방안까지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 예를 살펴보면 1882년 유학 김영효는“「이언(易言)」의 논수사편(論水師篇)에 의거하여 개항지역에 수군 군영을 설치하고 외국교관을 초빙하여 해군장병을 철저히 훈련시켜 해양방위를 견고히하자”고 건의하였고, 유학 고경문도 “인천항에 해군을 창설하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또 임오군란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박영효는 일본이 해양강국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해군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본 정부가 국가예산을 해군 건설에 우선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해군창설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없었다. 조선정부는 차선책으로 구 군영을 근대 해방영(近代海防營)으로 전환시키는 해양방위 편제작업에 착수하였다.

즉 부평부에 해군발족단을 설치하고 서해 5개 도서의 수군과 총융청 소속 속오군을 해방아문(海防衙門)에 소속시켰다. 그런후 용산에 해군본부를 남양에 해군작전사령부격인 해군통어영 창설하여 구 수군제와 근대 해군제를 혼용하였다. 당시 새로운 해군부대 건물을 건립하는데 사용되는 비용은 무위소용포량세. 수삼세. 포삼세 15만3천량을 전용하고 부족분은 통어영 이획미 985석과 경리청 이획목 15동을 전용하였다. 해군본부와 해군작전사령부 건물이 완성된 후 수병 300명을 모집하여 일본제 해군복(세라복)을 착용시킴으로써 외양적인 근대해군이 발족하게 되었다.


3. 본격 건립 착수

강화도 해군사관학교의 개교와 영국해양방위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근대 해양전술의 식견을 갖은 장교들이 있어야 가능한것이었다. 해군장교를 양성할 사관학교 건립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 된 것은 1893년 초였다. 조선의 군사제도가 청국식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고종황제는 해군만은 세계에서 가장 정예한 군대로 인식된 영국해군과 같은 조선해군을 창설하고 싶어했다. 고종황제는 조선주재 영국 공사 힐리어에게 조선정부의 근대 해군창설, 해군사관학교설립, 군함 1척의 판매 등에 협조하도록 부탁하였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조선의 빈약한 재정형편을 이유로 조선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정부는 해군 창설과 부대 건물을 구군영 개편과 부대 운용비의 전용으로 자체해결하고 해군사관학교 교사 건축은 조선 해관에서 영달한 1천원으로 기존건물을 증개축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했다.

이는 영국이 조선의 근대식 해군창설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자 청국의 도움을 받아 청국식 해군편제를 모방하고, 해군본부와 해군작전사령부 건물을 먼저 축조했다. 이 과정에서 해군사관학교교사 신축비 문제가 거론되자 직예총독 이홍장과 북양해군 사령관 정여창은 청국이 운영권을 갖고 있는 조선해관(세관)에서 그 비용을 지원토록 하였다. 이 조치에 따라 1893년 5월 1일 조선의 외무장관격인 교섭통상사무독변 남정철은 조선해관총세무사(세관장)인 영국인 몰간(Morgan/한국명:마근)에게 해군사관학교 건물 신축비 6천원의 지원을 요청하였고, 마근은 조선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여 요구액의 1/6인 1천원만 지급하였다. 조선정부는 이 돈으로 강화도 갑곳진 앞 이섭정 부근의 기존 수군관아를 개보수하여 교사로 활용하고 일부 부지를 정비하여 교련장을 마련하였다.

조선의 근대해군 창설을 황당무계한 것으로 치부했던 영국 정부는 조선이 해군본부와 작전사령부 건물 그리고 해군사관학교 건물을 건립하자 조선에서 얻을 기득권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게 되었다. 영국정부는 뒤늦게나마 조선이 요청한 근대 해군 창설에 한 몫을 담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방법은 명분은 극대화하되 손해는 보지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해법이 바로 조선해관(세관)을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주한 영국 총영사 힐리어는 청국 해관총세무사가 영국인 로버트 하트였고 조선해관의 총세무사가 영국인 몰간이라는 점과 두 사람 모두 영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조선 해관자금을 사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단지 군함은 고가(高價)이므로 조선의 재정 능력으로는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영어 교사와 군사 교련교사만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영국 정부는 이미 조선해관의 촉탁으로 근무하다 사직하고 귀국했다가 다시 조선에 입국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던 허치슨을 강화도 해군사관학교 영어교사로 근무케하고 군사교관으로 예비역 대위 콜웰을 군사학 교사로 준사관 제임스 커티스를 교련교사로 조선에 파견하였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3-11-17 17:03:22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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