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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해전(仁川海戰)의 전모(全貌) (下)


3. 인천해전의 경과

나. 인천항 대치

인천항 밖으로 탈출한 지요다는 아군 함정을 찾아 남하해 가던 중 8일 오전 8시 30분, 수평선상에서 수많은 연기를 발견하고서 가까이 다가가 우류 전투대를 상봉했다.

함장무라카미는 곧 기함나니와로 가서 우류 사령관을 만났다. 우류 사령관이 가장 묻고 싶어했던 것은“설마 바리야그와 카레예츠가 인천항 밖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하는 것이었다. 이 두 함정은 여순으로 도망치게 한다는 것은 적의 여순 함대의 증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꼭 격침시키고 싶었지만 인천항은 중립국 항구인데다가 열강의 군함들도 많이 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내에서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다. 국제 문제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는 행동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일 정도로 대본영은, “인천항 안에서는, 러시아 함정 쪽에서 먼저 덤비면 모르되, 이 쪽에서 싸움을 걸어선 안 된다”고 우류에게 전보를 쳐서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

우류 전투대는 지요다를 선두로 하여 인천으로 급행하였다.

8일 16시 20분 경 러시아 포함 카레예츠가 인천을 출항하여 여순으로 향하는 것을(일본함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우연한 출항이었음) 알게 된일본 함대는 먼저 수송함 엄호대형을 취하고 외해에서 전투태세를 취할 예정이었는데, 카레예츠가 먼저 발포한 후 바로 항내 묘지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그 이상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류 전투대는 두 척의 러시아 군함도 투묘하고 있는 항내에 닻을 내렸으며 그리고 17시 30분부터 전면전에서 육군의 상륙작업을 감행하였다.

적과 아군이 뒤섞여서 언제 항내 전투가 시작될런지 알 수 없어서, 열강의 군함들은 이 위험을 그저 잠자코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날 밤 9시에 인천 재박 선임함장인 영국 함정의 함장이 다카치호 호에 찾아와서는 이 항구는 중립국 항구인 이상 외국 군함에 위해를 미치는 포격이나 기타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라고 말하자, 함장 모리는“우리들은 육군 부대를 상륙시키라는 명령만을 받았을 뿐 전쟁 명령은 받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육군 부대의 상륙작업이 오전 4시에 끝날 것 같다는 전망이 섰을 때 우류 제독은 인천영사를 통하여 러시아 군함 바리야그 함장 루드네프 대령에게“2월 9일 정오까지 인천에서 퇴거할 것”을 요구하는 도전장을 보냈다.

한편, 각국 군함에 대해서도 피해가 미치지 않는 정박정으로 이동할 것을 요청했다. 이것이 9일 오전 7시였다.

점심식사를 일찍 마친 바리야그 함장 루드네프 대령은 함내 총원을 집합시킨 후, “나는 오늘 일본 해군사령관으로부터 전투행위를 개시함에 있어서 정오까지 출항할 것을 서면으로 접수했다. 물론, 나는 우세한 일본 함대와 전투를 시도할 각오로 출항하고 마지막까지 싸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점을 각오하고 조국을 위하여 용감히 싸워주기를 바랍니다”라고 훈시했다. 이어 군악대가 국가를 연주한 후 바리야그와 카레예츠는 닻을 올리고 이동하기 시작하다가 드디어 증기를 가득 올리면서 전 속력을 내서항 밖을 향하기 시작했다.

일본 측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서 야시로 대령이 함장인 1등순양함 아사마 등을 항 밖에 잠복시키고 있었다. 아사마가 우류 전투대에 합류한 것은 피해없이 바리야그를 항복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스트 위 신호병의 적함 발견보고 소리와 더불어 전 함정은 전투배치에 들어섰는데, 옆에 있던 3등순양함 지요다는 닻을 올릴 시간이 없어서 닻줄을 끊어 버렸을 정도로 러시아 함정의 출현은 갑작스러웠다. 시각은 정오 직전이었다.

아사마는 속력을 높였다. 바리야그와 카레예츠는 항구 근처의 팔미도를 향해 나아갔다. 두 함 모두 전투기를 내걸었다. 잠복하던 아시마도 전투기를 내걸고 더욱 근접했다.

쌍방의 거리가 7킬로미터에서 8킬로키터가 되었을 때 아사마는 8인치 포를 쏜 다음에 이어서 좌 포문을 열었다.

그 중의 후부 8인치 포탄이 바리야그의 함교 근처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함포에 있어서 러ㆍ일전쟁에서의 일본 해군 중에서도 최우수라 해도 좋았다. 이어서 발사한 전부 8인치 포탄도 바리야그의 거의 같은 장소에 맞았다.

이 때문에 바리야그는 함교가 산사 조각이 났고 다시 굴뚝 부근에도 명중했으며, 이어서 함의 중앙부 및 후부 함교에서 몇 발이 명중함으로써 대화재가 일어났다.

바리야그는 불을 끄기 위해서 팔미도 뒤쪽으로 후퇴했다. 일본 측은 그 곳이 항구 안이기 때문에 추격할 수가 없었다.

5분 정도 기다리자 다시 바리야그가 모습을 나타내어 다시 격렬한 사격이 이어졌다. 3등순양함 지요다는 해역을 달려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당시 군함의 전시 색깔은 회색이었고, 평시에는 검은 색이었다. 우류 전투대는 모두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지요다는 오랫동안 인천에 있었기 때문에 검은 색이었다. 연료도 전 함대는 전시용인 영국 석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요다만은 평시용인 일본 석탄이어서 이 함정만 엄청난 검은 연기를 토해 냈다.

바리야그는 왼쪽으로 기울었다. 카레예츠는 아직 상처를 입지 않았다. 이 두 함정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다시 한번 중립항인 인천항 안으로 도망쳐 버리는 것이었다. 항내 깊숙이 도망친 바리야그와 카레예츠는 각국 군함 사이에 숨어들 듯해서 아사마의 추격을 피했다. 아사마도 국제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을 염려하여 포격을 멈추고 항구밖으로 되돌아왔다.

바리야그의 피해는 심각한 상태였다. 함정은 크게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함포는 거의 파손되어 있었다. 보통, 항복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나 함장 루드네프 대령은 개전하자마자 러시아 제국의 군함이 항복하게 되는 불명예를 피하려고 했다.

그는 병사들에 대한 처리를 각국 군함들에게 부탁했다. 부상병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군함에 수용하게 하고, 다른 병사들에게는 동맹국인 프랑스 군함 파스칼에 타게 해서 상하이까지 수송하기로 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하이에서 나오지 않는 조건이라면 국제법상 저촉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처리가 끝나자 바리야그는 킹스턴 밸브(함정의 바닥에 있는 뚜껑)를 열어 자침(自沈)하였고, 카레예츠는 함장이하 전원이 배에서 내린 다음 화약고에 불을 붙여서 폭발시키고 말았다.

이 해전은 규모는 작았지만 일본인이 유럽인과의 사이에서 나눈 최초의 해전이었으며, 최초가 잘 된 맡큼, 일본측에 커다란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해전에서 전력비로 보아 일본 측의 승리는 당연하다 하더라도, 인명피해 측면에서 러시아 측은 사망 33명, 부상자 97명의 피해가 있었으나 일본 측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다. 러시아측의 사격 능력이 너무나도 열등하다는 데에 일본 측도 놀랐다. 바리야그는 전체 전투를 통해서 5백 30발이라는 대량의 포탄을 발사했는데 한 발도 일본 함정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기적이라기 보다 러시아 측의 사격능력 부족 때문이었다.

러시아 측은 바리야그를 수심이 얕은 해안 부근에 침몰하는 실수를 했기 때문에 썰물 때 선체의 4분의 1 정도가 물위로 드러나는 이 배를 일본이 인양, 수리하여‘소야’라는 함명으로 일본 해군이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4. 해전의 의의

인천해전으로 시작된 러ㆍ일전쟁은 양국에게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발트함대가 궤멸된 후에 러시아와 일본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중재를 받아들여 1905년 9월 5일 포츠머드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만주에서 철수하고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이익을 인정하였으며, 여순항과 요동반도 그리고 사할린 남부를 일본에게 양도하였다.

이러한 전쟁의 결과에 따라 러시아의 남진정책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패전의 후유증은 정치적 불안을 야기시키고 볼세비키 혁명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한반도 침략의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한 일본은 을사조약을 강요하여 조선의 주권을 빼았음으로써 조선침략을 본격화하고 대륙침략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세계열강의 하나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세계열강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적 지위의 확립과 더불어 일본은 군사대국으로 성장하고 주요 해군 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백년이 지난 오늘날 한반도가 안고 있는 지정학적 여건과 상황은 그 본질에 있어서 백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ㆍ북 문제가 해결의 출구를 찾지 못한 가운데, 한반도 자체의 정세가 유동적이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의 이해관계도 백년 전과 크게 다르지가 않은 것이다. 경제가 역동적인 성장으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동북아에는 냉전구도의 붕괴에 따른 세계적인 군축의 분위기와는 달리, 중ㆍ일간의 지역패권 경쟁이 점차 가시화 되고 있다. 특히 해군력의 경쟁적인 증강은 항반도 주변해역의 파고를 높이고 있다.

지난 백년 간 우리 민족이 겪어 온 파란의 역사에서 자강(自强)만이 국권을 지킬 수 있다는 교훈에 따라,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국운상승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에 진입한 지금이 국운상승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주국방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한 시기라 하겠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5-02-03 18:51:41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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