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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해전(仁川海戰)의 전모(全貌) (上)


1. 서언

지난 2월 10일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빅토르 표드로프 제독이 미사일 순양함인 바리야그(Varyag : 11,490t급), 대형 구축함 애드미럴(Admiral : 8500t급) 그리고 대잠 초계함인 카레예츠(Koreets : 1,200t급)를 인솔하고 인천해전(제물포해전) 100주년 추모 행사를 갖고 선배 전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인천항에 입항했다.

러시아 함대는 방한 첫날 100년 전 일본군과 치열한 해전을 벌이다 장렬히 산화한 해군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해상 헌화식을 인천 앞바다에서 가진 뒤 인천항 석탄부두에서 입항행사를 실시했다. 러시아 함대는 또 11일 오후 인천 연안부두에서 러·일전쟁 희생자 추모비 제막식을 가진 뒤 12일 함정공개 행사 등을 거쳐 14일 출항했다.

러시아어로“노르만인”을 뜻하는 순양함 바리야그와 러시아어로‘고려인’을 뜻하는 포함‘카레예츠’(Koreets)함은 100년 전 러·일전쟁 당시 맹활약한 러시아 함으로써 당시 전투에서 군인의 명예를 걸고 싸우다가 자침과 자폭을 선택함으로써 러시아 해군장병들 사이에서‘군인정신의 귀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확히 백년 전에 발발한 러·일전쟁의 최초 교전으로 전개된 인천해전의 발발 배경과 경과 그리고 의의 등에 대하여 알아본다.





2. 러·일전쟁의 배경 및 개요

러·일전쟁은 부동항 획득과 남진정책을 추구하는 러시아와 대륙침략을 도모하는 일본이 한국과 만주의 이권을 둘러싸고 전개한 전쟁이었다. 따라서 이 전쟁은 한국과 만주 그리고 그 주변해역에서 전개되었으며, 이 전쟁에서 해군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시모노세끼조약(下關條約 : 1895. 4. 17)에 따라 일본은 청으로부터 요동반도(大連, 旅順)와 대만을 할양받고 한반도에서 청의 세력을 축출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야심에 대하여 일부 열강이 의구심을 갖게 되고 이른바 삼국간섭(1895. 4. 23)을 제기하였다. 즉, 러시아, 프랑스 및 독일이 일본에 대하여 요동반도의 반환을 권고하였던 것이다.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할 자신이 없었던 일본은 부득이 3국의 요구를 수용하고 요동반도를 반환하였다.

한편, 러시아가 만주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는데, 1898년에 러시아는 청으로부터 여순과 대련을 조차하고 여순항을 군항으로 개발하였다. 1900년에 의화단사단을 계기로 만주에 출병한 러시아군은 의화단사건이 진압된 후에도 만주에 그대로 주둔하였다. 미국, 영국 및 일본이 러시아에 대하여 만주에서 철군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러시아는 1차 철군만 실시하고 중지하였다.

1902년 2월 1일에 영국과 일본이 영·일동맹을 체결하였다. 이 동맹은 청에 대한 영국의 이권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의도에서 체결되었던 것이다. 영·일동맹으로 입장이 크게 강화된 일본은 대러시아 전쟁을 준비하였다.

러시아와 일본은 만주와 한반도 이권을 둘러싸고 협상을 벌였다. 일본의 요구는 러시아에 대하여 만주에서 철군하고 한국에서 일본의 이익을 인정하며 만주에서 일본의 상업상 진출을 허용하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러시아는 만주에서 일본의 이익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과 한국의 39。이북을 중립지대로 설정하자고 제의하였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고 1904년 2월 6일 양국은 국교를 단절하였다.

양국의 전력을 살펴보면, 육군 전력에 있어서 일본이 12개 사단 그리고 러시아가 70개 사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군 전력에 있어서는 일본이 전함 6척을 비롯하여 총 152척 총톤수 26만톤이었으며, 러시아는 태평양함대에 전함 7척을 비롯하여 19만 1천 톤을 보유하고 있었다. 양측의 전력을 비교해 볼 때, 개전 초에는 일본이 유리하고 장기전에 돌입하면 러시아가 유리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일본 해군은 1903년 12월에 상비함대로서 제1, 제2 및

제3함대를 편성하고 제1 및 제2함대로 연합함대를 조직하였다. 연합함대 사령관에는 제1함대 사령관인 도고(東鄕平入郞) 대장이 보임되었으며, 1904년 3월에 제3함대도 연합함대에 편입되었다. 제1함대의 주력인 제1전대 전함 6척과 제2함대의 주력인 제2전대 1등순양함(장갑순양함) 6척이 소위 일본 해군의 66함대를 형성하였다.

러시아 해군은 3개 함대 즉, 발트 함대, 흑해함대 및 태평양함대로 분할되어 있었다.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일본 해군에 비하여 다소 열세했지만, 주력함에 있어서는 거의 대등했다고 볼 수 있다. 개전시에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여순(전함 7척), 블라디보스톡(장갑순양함 4척)과 인천(순양함 1척과 포함 1척)에 분산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분산이 결국 러시아 해군의 전략적 과오가 되었다.

일본군의 작전계획은 제1기 작전에서 압록강 이남에서 작전하며, 제2기 작전에서 만주로 작전을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본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일본 해군의 전략은 러시아의 발트 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격파하여 제해권을 확보하고 육군부대의 원활한 상륙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러시아군의 작전계획은 일본군을 견제하고 시간을 벌면서 유럽 러시아에서 증원군이 도착하면 결전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주에서 결전하기 위한 러시아 육군의 병력증강은 단선인 시베리아 철도에 의존해야 되기 때문에 신속하지 못했고 축차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전략은 일본 육군의 상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발트 함대가 도착한 후에 일본 해군을 격파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1904년 2월 10일 러시아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였는데, 이에 앞서 일본 해군이 2월 8 ~ 9일에 인천항의 러시아 함정과 여순항의 러시아 함대에 대하여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지상전은 주로 남만주에서 진행되었고, 해군전은 한반도의 동·서·남해에서 전개되었다. 개전 후 여순항의 러시아 함대에 대한 일본 해군의 공세가 진행되는 동안, 제해권을 바탕으로 일본 육군이 한국과 만주에 상륙하였다. 3월 중순에 진남포에 상륙한 일본 제1군이 4월에 한국 점령을 완료하고 5월 초에 만주로 진격하였으며, 5월 초에 일본 제2군이 요동반도에 무혈 상륙한 다음 러시아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북진하였다. 1904년 7월 31일부터 일본 제3군이 여순항을 탈취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여 사투 끝에 1905년 1월 2일 이를 함락시켰다.

일본 육군은 요양전투(1904. 8. 30 ~ 9. 4), 사하전투(1904. 10. 10 ~ 16)및 봉천전투(1905. 3. 10)에서 격전 끝에 러시아군을 격퇴하고 승리를 거두었지만 출혈도 많았다. 반면에 러시아군은 봉천전투 이후에도 만주에 대병력을 집결시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마해전(1905. 5. 26 ~ 27)에서 러시아의 발트 함대가 패전한 후에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를 받아들였고, 9월 5일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3. 인천해전의 경과

1904년 2월 4일 일본 어전회의에서 대 러시아 전쟁이 결정됨에 따라 일본 연합함대는 2월 6일 오전에 사세보(佐世保)를 출항하였다.

6일 오전 9시 기함 마스트에“예정대로 출항하라”는 신호에 따라 지도세(千歲: 2등순양함)를 기함으로 하는 제3함대가 선두로 출항했다. 이어서 제1부터 제5까지의 구축함정대, 제9, 제4어뢰정대가 뒤따랐고, 제2함대 제2전대가 기함 이즈모(1등순양함)를 선두로 출항하고, 마지막으로 연합 함대의 핵심전력인 제1전대가 미가사(三笠:전함)를 기함으로 아사히, 후지, 야시마, 시키시마, 하쓰세 순서로 나갔으며, 이 뒤를 어뢰정대 등이 따랐다.

오후 2시, 제4전대 사령관 우류(爪生外吉)제독의 인솔하에 1등순양함 아사마(淺間: 9,750톤) 2등순양함 나니와(浪速)와 다카치(高千穗), 3등순양함인 아카시(新高), 니타카(對馬)로 편성된 우류(爪生外吉)전투대가 출항했다.

인천항에 있는 러시아 함정의 처리와 육군 선발대 약2,200명(오쿠라, 후쿠오카, 오무라에서 모인 4개 대대)의 인천상륙을 명령(仁川作戰)받은 제4전대 사령관 우류제독은 육군 수송선 3척을 호송하고 2월 7일 16시 30분경 주력함대와 분리하여 인천항으로 향하였다. 그의 전력은 제4전대 2, 3등 순양함 4척에 1등순양함 아사마(淺間)와 3등순양함 지요다(千代田: 2,450톤)및 제9수뢰정대, 제14수뢰정대로 증강 편성되었다.

이 때 경성의 외항인 인천항에는 러시아의 2등순양함 바리야그(6,500톤), 포함 카레예츠(Koreets : 1,213톤)외에도 제3국 군함으로 영국의 탈보트, 이탈리아의 엘바, 프랑스 군함 파스칼 등이 각각 닻을 내리고 있었다. 일본의 3등순양함 지요다도 이속에 섞여 투묘하고 있었다. 지요다는 전년 12월부터 거류민 보호를 위해 인천에 가 있었다. 두 척의 러시아 함정도 마찬가지 임무로 정박 중이었다.

러시아의 2등 순양함 바리야그는 인천에 있는 각국 군함 중에서 최대의 군함으로서 만일 전쟁의 서전을 벌인다면 작은 함정인 지요다는 순식간에 분쇄되고 말 것이다. 2월 7일 부산 부근에서 일본함대가 러시아 기선 한 척을 나포했다는 전보에 접해 지요다 함장 무라카미 대령은 이것이 개전임을 알아채고 이날 밤 11시 은밀하게 저속력으로 항구를 빠져나왔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5-02-02 16:01:40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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