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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100대사건 <9> 9·28 서울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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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사령관은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 9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하게 되자 총 반격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 상륙작전으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은 9월18일 미 1해병 사단에 서울을 공격해 탈환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미 1해병 사단에는 국군 제1해병 연대가 배속돼 있었다. 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김포지구에 진출해 있던 제5해병 연대로 하여금 적절한 도하 지점을 선정, 한강 도하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는 한편 우측에 위치한 미 1해병 연대에 영등포 이남 지역에 대한 작전 책임을 미 제7사단에 인계하고 한강선으로 진출해 도하 준비를 서두르도록 명령했다. 미 7사단과 국군 17연대는 서울 남쪽에서 북한군의 증원과 퇴로를 차단하면서 낙동강 전선을 돌파, 북상하는 미8군과 연결토록 했다.

한편 북한 인민군은 9사단과 경인가도에서 패퇴한 18사단 등 2만여 병력을 동원, 서울을 고수하려고 했다. 특히 그들은 철원에서 새로 편성돼 온 독립 25여단을 와우산~노고산~와산~인왕산을 연하는 서울 서쪽의 산줄기에 배치, 일본군이 구축했던 진지를 시민들을 강제 동원,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시내 교차로마다 각종 장애물을 설치하고 국군과 유엔군의 서울 진입을 저지하고 있었다.

드디어 서울 탈환을 위한 국군과 유엔군의 공격이 개시됐다. 9월19일 미 1해병 사단 수색중대가 행주나루 대안에서 도강을 시도했으나 행주산성 고지로부터 적의 저지 사격이 심해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다음날인 9월20일 미 제5해병 연대와 이에 배속된 국군 해병 1개 대대가 능곡 쪽으로 한강을 도하하는 데 성공, 수색 방향으로 진격해 9월24일 서울 수복 작전의 최대 격전장인 연희고지까지 진출하게 된다.

그 뒤를 이어 역시 능곡 쪽으로 한강을 도하하는 데 성공한 미 제7해병 연대와 배속된 국군 해병 1개 대대는 서울 북쪽의 북악산 방향으로 우회 공격을 개시했다. 우측의 미 제1해병 연대와 이에 배속된 국군 해병 1개 대대는 영등포를 완전히 장악하고 9월24일에는 마포에서 한강을 도하해 시가전에 돌입했다.

이렇듯 미 제1해병 사단과 여기에 배속된 국군 제1해병 연대가 서울 외곽으로부터 진격을 계속하고 있을 때 미 7사단 32연대와 국군 제17보병 연대도 한강을 도하, 서빙고 일대를 장악한 후 이날 밤 서울 시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남산을 점령하게 된다. 서울 시가지 대부분을 감제할 수 있는 남산을 장악해 공격 부대를 효율적으로 엄호할 수 있게 되자 한미 해병대들은 서대문과 마포 일대를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치열한 시가전이 전개됐다.

26, 27일 이틀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한미 해병대는 삼각지와 남대문 일대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격멸하고 사무친 원한을 잠시나마 뒤로한 채 3개월 만에 다시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8일에는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적을 모두 소탕하고 서울을 완전히 수복하게 됐다.

다음날인 9월29일 중앙청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가 임석한 가운데 서울 수복을 경축하는 감격스러운 의식이 거행됐다.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는 미 1해병 사단과 제7보병사단에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을 수여, 그들의 전공을 치하했으며 맥아더 사령관에게는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비록 북한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기습 남침이라고는 하지만 개전 3일 만에 수도가 실함된 것은 실로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90일간의 적 치하에서 강요당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비극은 누가 뭐라 해도 허술한 국방의 결과임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확고한 국방 태세의 확립이야말로 그 어떤 이유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제임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김영이 군사평론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6. 3. 2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3-02 00:14:15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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