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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속 승리학 <31> 아눌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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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극에 달했던 20세기 초, 근대화된 유럽의 군사력은 무적처럼 보였다. 원주민들이 유럽 강국과의 싸움에서 참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현지 원주민들이 뛰어난 전술을 구사, 유럽의 근대 군대에게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눌라전투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은 20세기 초 지브롤터 해협 남안의 북아프리카 모로코 해안 일대를 영유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해안 가까이까지 산악지대가 펼쳐졌고 교통이 불편해 통치가 매우 어려웠다. 이에 1920년 스페인 판무관 베렌게르는 지브롤터 해협 남안의 내륙으로 진출, 보다 넓은 영토와 안정된 지배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리프족 등 베르베르 원주민들은 스페인의 침략 의도에 강력히 반발했다. 1921년 분열된 군소 부족을 통합해낸 걸출한 반군 지도자 압드 엘크림은 침공을 준비하는 스페인의 실베스트레 장군에게 아메크란 강을 넘어선다면 무력으로 물리칠 것이라는 경고를 보냈다. 실베스트레는 코웃음을 치면서 이를 무시하고 강 너머 교통로 요소요소에 거점을 설치했다.

1921년 6월1일, 이 경고는 현실로 나타났다. 2000여 명의 리프족 병사는 스페인 병력 250명이 수비하는 아바란을 야간에 포위, 기습했다. 이 전투를 필두로 리프족 병력들은 교통로를 따라 설치된 스페인군 거점을 급습했다. 스페인군은 산악지대에 숨은 리프족의 주력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고 반대로 스페인군의 고립된 거점들은 수비병이 너무 적어 쉽게 각개 격파당했다.

7월에 이르자 스페인의 중요 거점이던 이구에리벤까지 위험해졌다. 이에 스페인의 실베스트레는 직접 대규모 증원 병력을 이끌고 아눌라에 도착했다. 이구에리벤 구출을 위해 4000여 병력을 동원한 실베스트레는 리프족이 장악한 외곽 방어선을 돌파하고자 했으나 그들을 맞은 것은 놀랍게도 스페인제 야포와 기관총이었다. 리프족은 소규모 거점들을 습격하며 노획한 중화기로 단단히 무장했던 것.

이구에리벤 구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스페인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실베스트레 또한 의기소침해 차후 작전 방향에 대한 명쾌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7월23일 아침 퇴각을 명령했다. 동요하기 시작한 병사들 사이에 급격한 공황이 번졌으며 통제 불능 상태의 도주로 이어졌다.

아눌라 외곽에 포진했던 리프족 병사들은 이들을 추격, 일방적인 학살을 벌였다. 이후 3주여 동안 이어진 소탕전에서 1만4000명의 스페인군은 고작 3000여 명의 리프족 병력에게 전사 8000명을 비롯해 90% 이상의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혼란의 와중에서 실베스트레가 전사하고 그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최악의 참패였다.

실베스트레는 후방을 잠식하는 적에 대해 네 배가 넘는 병력과 우수한 병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명쾌한 목표 없이 꽁무니를 쫓아다니기에만 급급했다. 스페인의 대군은 조직적으로 적의 거점을 분쇄하지 못한 채 험난한 산악 지형을 헤매다 고립되면서 지쳐 갔고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전쟁에는 절대 강자도 없고 절대 약자도 없는 법이다. 자만에 도취된 채 부하들에게 명쾌한 비전과 전투 의지를 고취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지휘력이 얼마나 어이없는 참극을 낳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전투가 아눌라전투라고 할 수 있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6. 2. 27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2-27 20:56:12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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