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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100대사건 <8> 유엔군 한국전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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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무초 주한 미 대사로부터 북한군의 남침 사실을 보고받은 것은 미국 시간으로 24일 오후 9시26분이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 회의 소집을 정식 요청했다.

안보리 긴급 회의는 25일 오후 2시에 소집됐는데 이 자리에서 북한의 남침을 ‘국제 평화 파괴 행위’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적대 행위 중지와 함께 북한 군사력을 38선 이북으로 철수시킬 것을 촉구하는 한편 유엔 회원국에게 북한에 대한 지원을 삼가토록 요청하는 결의안을 가결, 전 회원국에 통보했다. 이 결의안은 표결 결과 9대0으로 가결됐는데 때마침 소련의 유엔 대표는 장기 결석 중이었기 때문에 표결에 참여하지 못했다.

비록 이 결의안은 북한의 군사 행동을 제지시키는 데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유엔이 필요한 후속 조치를 취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6월27일 한국 임시위원단으로부터 “북한이 유엔 결의안을 준수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한국 정부가 조기에 전복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보고를 받은 유엔 안보리는 “그들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지원을 제공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이미 7월1일 주일 미24사단 21연대 1대대가 선발대로 부산에 상륙해 곧바로 전선에 투입,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대대장은 스미스 중령이고 병력은 배속 요원을 포함해 모두 540명이었다. 이 스미스 부대가 오산 부근 죽미령 고개에서 미 지상군으로서는 최초로 북한군과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유엔 결의안의 통과로 이미 한국전쟁에 투입, 작전을 수행 중인 미 지상군 활동이 사실상 합법화됐고 유엔 회원국들과 자유 우방들이 한국에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또 이를 계기로 미군의 본격적인 증원이 이루어졌고 52개국이 유엔의 결의를 지지했으며 16개국이 전투 부대를,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그리고 20개국이 물자를 지원하기에 이른다.7월1일에 다시 소집된 안보리는 영불 양국이 공동 제안한 ‘공동 무력 원조’와 관련한 안건을 토의했는데 이 결의안은 7월7일 가결됐다.

이 7·7 결의안의 내용은 한국에서 작전을 수행할 통합사령부를 설치하고 미국 정부에 최고 사령부 설치를 요청하며, 작전에 참가하는 각국 대표가 자국기와 함께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7월8일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맥아더 원수는 도쿄에서 유엔군사령부를 공식적으로 창설하고 극동군사령부 참모진을 대부분 유엔군사령부 참모로 겸임 발령했다.

이와 같이 유엔군이 구성되고 지휘 체제가 단일화됨에 따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됐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의 이양은 한국 정부가 대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이루어졌으며 이것을 일명 ‘대전 협정’이라고 한다.한국군과 유엔군은 유엔군의 참전 초기부터 실질적으로 연합작전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대전 협정이 이루어진 7월14일에 제도적으로 연합작전을 위한 지휘 체제가 마련된 것이다.

유엔군사령관은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각 구성군사령관에게 위임함으로써 한국 육군은 미8군사령관, 해군은 미 극동 해군사령관, 공군은 미 극동 공군사령관의 작전 통제를 받으면서 각각 전쟁을 수행하게 됐다.한국전쟁에 참가한 유엔군은 북한군의 기습 남침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정전 후 안보 취약 시기에도 또 다른 도발을 저지하는 억지력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 김영이 군사평론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6. 2. 22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2-22 18:12:08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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