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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속 승리학 <30> 하틴 전투


십자군 원정으로 세워진 기독교계 예루살렘 왕국의 주변 정세는 12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급박히 돌아가고 있었다.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가 보두앵 5세의 죽음과 함께 그의 양아버지 기 드 뤼지냥에게 넘어간 사이 반대편 이슬람 진영은 살라딘의 지휘 하에 단단히 결속됐다. 예루살렘 왕국 주변 이슬람 세력이 처음으로 단일 지배 체제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학 관계 변화를 주시하고 있던 기독교 측 인물인 트리폴리의 레이몽 3세는 기 드 뤼지냥의 왕위 등극을 반대하며 독자적으로 살라딘과의 화평을 도모했다. 그는 1187년 예루살렘 왕국 공격을 위해 출병한 이슬람 측의 살라딘에게 자기 영지의 통과까지 허락했다. 하지만 5월에 돌발한 크레송 전투로 화친 분위기가 깨지면서 레이몽 3세와 기는 동맹을 맺어 살라딘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살라딘은 병력을 투입해 기독교 측 도시인 티베리아스를 포위, 7월2일 시가를 장악했다. 겨우 성채로 피신해 고립된 인사들 중에는 레이몽 3세의 부인까지 끼어 있었다.

위기가 고조되던 7월3일, 기가 이끄는 2만여 병력은 세포리아를 출발, 티베리아스를 구원하기 위한 행군을 시작했다. 애당초 레이몽 3세는 물을 확보하기 쉬운 세포리아 등 유리한 곳에 진지를 잡아 전투를 수행하자고 주장했으나 부하들에게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기 원했던 기는 주변 지역에 포진한 기독교 세력을 집결해 성급한 대응에 나서게 된다.

일찍부터 십자군 병력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던 살라딘은 척후 기병들을 행군로 주변에 배치하고 행군 대열 측면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살라딘 자신도 예하의 이슬람군 주력 3만여 명을 이끌고 나와 결전을 준비했다.

식수를 확보할 수 없는 광야에서 끊임없는 적의 습격에 지친 십자군은 목표에 이르기도 전에 훤히 노출된 지대에 숙영지를 꾸미고 방어에 나섰다. 살라딘은 재빨리 숙영지를 포위하고 밤새 십자군을 괴롭혔다. 이슬람군은 주변의 마른 풀숲에 불을 놓아 연기를 피워댔고, 십자군은 식수 부족의 어려움에 연기로 시야까지 막히면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7월4일 아침, 혼란 속에서 살라딘의 궁병들은 곳곳으로 침투, 화살을 날려대며 십자군을 조여들어 갔다. 기는 혼란에 빠진 병력을 수습하고 공격 대형을 잡으려 애를 썼으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며 탈주자가 속출했다.

특히 이틀째 물을 먹지 못한 병사들의 갈증이 커지면서 단위 부대들은 통제력을 상실하고 샘과 갈릴리 호수 방향으로 절망적인 돌격을 벌였다. 이들은 길목을 가로막고 있던 이슬람 전사들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간신히 대형을 지키고 있던 주력도 ‘하틴의 뿔’이라고 불리는 언덕으로 자꾸만 밀려났다.

기독교 측 템플기사단·요한기사단 소속 기사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고립돼 포위당한 기 국왕은 결국 봉행한 진품 십자가 성물과 많은 귀족이 함께 살라딘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왕위 계승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던 기의 개인적 욕망이 무리수를 초래, 십자군의 참패를 불러온 것이다.

결국 기가 주변 도시에서 긁어모은 2차 십자군 세력은 이 전투에서 사실상 궤멸됐고 그해 10월에는 예루살렘이 다시 이슬람 수중에 들어가며 전 유럽은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됐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6. 2. 20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2-20 18:37:29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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