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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군사문화재 순례 - 신전자취염초방언해


화약 무기에 필요한 흑색화약은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였다. 칼·창·총통 등 무기류는 한번 제작하면 5~30년 정도의 내구성을 가지지만 흑색화약은 끊임없이 소비되므로 필요한 소요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

조총 한 발을 발사할 때 3g의 흑색화약이 필요하다. 구경이 보다 큰 화약 무기의 경우 화약량도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승자총통의 경우 27.6g이 필요하고, 대형 화포인 천자총통의 경우 830g이나 필요하다.

신기전 등 조선이 자랑하는 로켓형 무기는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화약을 소비하는 괴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량의 화약이 필요한 점이 약점이었다. 대신기전 한 발을 발사하는 데 필요한 화약량은 2900g에 달해 조총에서 탄환 한 발을 발사할 때 화약량의 966배에 달할 정도다.

이런 소요량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대량의 화약을 제조해야 하지만 당시의 제조 공정으로는 쉽지 않았다. 흑색화약은 염초·유황·목탄 등 세 가지 재료로 제조된다. 유황과 목탄은 복잡한 공정 없이 자연 상태에서 채취하거나 간단한 공정을 거쳐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염초였다. 염초, 현대 용어로 질산칼륨은 자연 상태에서 쉽게 입수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만 염초가 만들어졌다. 당연히 화약제조에서 가장 어려운 공정은 염초 제작 과정이었다. 흑색화약 제조 성공 여부나 흑색화약 제조량은 거의 전적으로 염초 제작 기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초 제조는 곧 화약 제조를 의미했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염초 제작법은 비밀에 속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려 말 최무선에 의해 염초 제조 기술이 확보됐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효율성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염초 제작은 지붕 처마 밑이나 화장실 주변의 흙 등 특수한 토양을 채취, 물에 녹인 후 가열해서 결정을 채취하는 과정으로 이뤄졌다. 군대에 소속된 장인들이 염초 재료 확보를 위해 가정집에 진입, 흙을 퍼가는 과정에서 언쟁이나 소동이 벌어지는 일도 흔했다. 권세 있는 양반 가문의 경우 흙 채취를 거부하다가 법적 문제로 비화되는 사례가 있을 정도였으며 심지어 벼슬살이하는 관료가 자기 집에서 흙 채취하는 것을 거부하면 파직시키는 규정까지 마련될 정도였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화약이 대량으로 소모되고 재능 있는 염초 장인이 전쟁 중 다수 사망한 탓에 화약이나 염초 확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동안 부족한 염초를 명나라에서 수입해서 충당했지만 1634년 명나라가 염초 무역을 중단시키자 조선에는 비상이 걸렸다.

해결책은 염초 제조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었다. 이런 위기감 속에 조선은 효율성이 더 높은 명나라의 최신 염초 제작 기법을 필사적으로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결국 성공한다. 특히 일개 하급 무관인 성근이 중국에 유랑한 조선인이나 명나라 피난민을 일일이 만나며 기술 확보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그 결과물을 정리한 책이 바로 1635년에 간행되고 1685년 재간행된 ‘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사진)다. 편집자인 이서(李曙)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서문에서 “기존 방법에 비해 새로운 염초 제조 기술이 노력은 절반 정도지만 성과는 백배나 나오는 방식”이라고 자랑한다. 현재 ‘신전자취염초방언해’는 서울대 규장각·장서각 등에 소장돼 있다.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기자, 2006. 2. 1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2-14 18:56:15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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