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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속 승리학 <29> 산 하씬또 강 전투


미국 남부 텍사스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론스타’(Lone Star)라고 부른다. 이런 호칭에서 드러나듯 텍사스 주민들은 미국 연방과 구별되는 독자적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텍사스는 원래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의 일부였다. 그러나 텍사스 주민들은 무력 투쟁을 통해 멕시코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이런 독립투쟁의 역사를 상징하는 싸움이 알라모 요새전투와 산 하씬또(San Jacinto) 강 전투였다.

1835년 텍사스 주민들은 멕시코 지배에 반기를 들고 봉기해 멕시코 병력들을 몰아냈다. 그러자 이듬해 멕시코 대통령 산타 안나 장군은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21문의 야포와 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텍사스로 출정했다.

우세한 병력으로 밀어붙이던 멕시코군은 트래비스 중령 휘하의 200여 병력이 농성하고 있던 알라모 요새를 포위했다. 알라모 수비대는 선전했지만 3월6일 밤, 8배의 전력차를 감당해 내지 못하고 결국 붕괴돼 전멸했다.

여세를 몰아 산타 안나 장군은 샘 휴스턴이 이끄는 텍사스군 주력을 추격해 갔다. 산타 안나의 원래 작전안은 병력을 3개 지대로 나눠 각기 다른 방향에서 텍사스군을 조여들어 가 포위 섬멸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알라모 함락 이후 순탄한 진격에 의기양양하던 산타 안나 장군은 계획을 수정, 목표를 분산시켰다. 1개 지대는 텍사스 지방정부 공격으로 돌리고, 다른 지대는 보급로 확보를 이유로 후방으로 돌렸다. 산타 안나 장군이 직접 이끄는 멕시코군 지대 1200여 명은 4월19일 마침내 휴스턴의 주력을 따라잡았으며 산 하씬또 강 일대에 포진했다. 그리고 21일 행군에 지친 병력을 쉬게 하고, 22일 일격으로 텍사스군을 격멸한다는 식으로 한껏 여유를 부렸다.

우세한 적 앞에 선 휴스턴은 방어에 주력하자는 부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담한 주간 기습 공격을 선택했다. 21일 오후, 낮잠에 빠진 멕시코군을 향해 텍사스군 910명은 풀숲을 헤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알라모를 기억하자’는 외침과 함께 쇄도한 텍사스군에 멕시코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기습적인 백병전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멕시코군은 이내 패주했고 무려 800여 명의 사상자를 남긴 채 단 20여 분 만에 격멸당했다. 이튿날에는 도주하던 산타 안나 장군마저 포로가 돼 전투는 멕시코군의 완벽한 패배로 귀결됐다.

여러 면에서 유리하던 멕시코군은 결전을 앞두고 어처구니 없는 군기 문란을 보였다. 숙영지 주변은 개활지여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접근하는 텍사스군을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병력과 화력 모두 열세인 적이 대낮에 개활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므로 멕시코군에게는 대승리를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보초도 제대로 세우지 않은 멕시코군은 기회를 살리기는커녕 일격에 분쇄됐다. 이러한 참패에는 작은 승리에 도취돼 병력 분산의 호기를 부린 산타 안나 장군의 오만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용병에 있어 지휘관 스스로가 자신을 겸허히 채찍질하지 않았을 때 결국 전 부대의 붕괴로 이어진 전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누구나 알면서도 빠져드는 그 함정 때문에 멕시코는 결국 광대한 텍사스를 상실해야 했던 것이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 2006. 2. 13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2-13 19:17:54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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