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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mm 곡사포 역사


한국 육군이 운용했거나 운용하고 있는 105mm 곡사포(사진)는 M3을 시작으로 M2·M2A1·M101·M101A1·M101 국내 생산형, KH178 등 다양한 모델이 있다. 우리 포병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뜻 매우 복잡하게 보이는 이들 105mm 곡사포의 상호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중 M3과 국내에서 개발한 KH178을 제외하고는 계통적으로 유사한 곡사포라고 할 수 있다. M3은 지난 25회에서 설명한 대로 1948년 우리 육군이 최초로 운용한 곡사포로 공수부대가 사용하기 적합하도록 경량화된 것이 특징이다.

M2 곡사포는 34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105mm 곡사포의 베스트셀러다. M2는 40년 포가의 형태를 개조하면서 포미환의 형태도 바뀌었다. 이 모델을 M2A1이라고 부른다.

특히 M2A1 곡사포는 50년 7월부터 한국군이 인수, 같은 해 9월께부터 6·25전쟁 당시 수적으로 우리 육군의 주력 곡사포가 됐다.

미국은 6·25전쟁 종료 후 곡사포를 포함한 각종 무기 체계의 제식 명칭을 일제히 변경했다. 유사한 제식 명칭이 많아 혼돈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때 105mm 곡사포 M2A1도 M101로 명칭이 바뀌었다. M101은 포가의 형태에 따라 M101 원형과 M101A1로 다시 나뉜다.

이처럼 M2부터 M101A1까지의 105mm 곡사포들은 사실상 거의 동일한 종류의 화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산 M101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70년 초반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정책에 따라 주요 무기 체계의 국산화 시도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때 105mm 곡사포도 역설계를 통한 국내 생산이 시도됐다. 보유하고 있던 M2A1 곡사포가 노후해 신품이 필요했으나 미국으로부터 M101 곡사포 도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들은 도면도 없는 상태에서 한국군이 보유한 곡사포의 규격을 측정, 설계 개념을 파악했다.

포신의 강선을 가공할 수 있는 기계도 없는 상태에서 강선 가공 기계를 자체 제작하는 등 애로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73년 3월 마침내 시제품이 완성됐다.

같은 해 6월25일 박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05mm 곡사포 등 다양한 국산 무기 시제품의 시사회(試射會)가 열려 성능을 과시하기도 했다. 정밀 가공 기술 기반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이뤄 낸 기적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곡사포 개발에 냉담한 태도를 취했으나 105mm 곡사포 개발이 성공하자 태도를 바꿨다. M101 곡사포 설계도 제공을 제안하면서 대신 해외 수출은 미국과의 협의를 거칠 것을 요구해 온 것.

결국 유재흥(劉載興) 국방부장관과 리처드 G 스틸웰 주한미군사령관이 73년 6월9일 만나 군 병기·장비 물자에 관한 기술 자료 교환 문제를 협의하고 같은 해 9월12, 13일 열린 한·미 연례안보회의에서 이 문제에 관한 최종 합의를 보게 됐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M101 105mm 곡사포를 포함한 각종 병기의 도면 등 기술 자료를 74년부터 입수하게 됐다. 이에 따라 76년까지 M101 국내 생산에 필요한 기반을 모두 갖추고 77년부터 생산이 시작됐다.

국방과학연구소는 78년부터 M101의 국내 생산에 만족하지 않고 사거리가 더 길고 포신 등 주요 부품이 다른 독자적인 신형 105mm 곡사포 개발도 시도했다. 그 결과물이 1983년에 전력화된 KH178 곡사포다.

이 곡사포는 사거리가 14.6km로 M2·M101 계열의 11.2km보다 더 길다. 방위산업진흥회가 발행하는 팸플릿에서는 KH178 곡사포를 한때 LDK1K1로 표기한 적도 있지만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곡사포다.

이처럼 각 105mm 곡사포에는 한국군이 시대별로 걸어온 애환의 역사가 상징적으로 얽혀 있다. 창군 당시 최초로 도입했으나 성능이 낙후한 M3 곡사포, 미군으로부터 공여받아 6·25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공헌한 M2A1 곡사포, 기적을 창출한 M2A1·M101 역설계 성공, 독자적인 곡사포 설계 능력을 입증한 KH178에 이르기까지 사연이 없는 무기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2005-01-14 21:53:19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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