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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백두산함


1950년 6월25일 저녁 부산에서 세 시간 가량 떨어진 해상. 해군 백두산함(PC - 701·사진)은 수상한 선박과 마주쳤다. 동해안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오고 있는 정체 불명의 이 화물선은 국기도 없었고 배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백두산함에서 화물선에 수기 신호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 국제 신호 규정에 따라 조명 신호를 다시 보냈으나 역시 응답이 없었다. 일단 주포 한 발을 위협 사격으로 발사해 괴선박의 반응을 보기로 했다. 함장의 전투 배치 명령에 따라 3인치 포탄을 장전, 화물선에 접근했다.

백두산함이 최고 속력인 18노트로 괴선박의 우현 90m까지 접근했을 때 화물선 갑판에서 85mm포로 추정되는 포 1문과 중기관총 2정이 식별됐다. 갑판에는 군복을 입은 북한군으로 가득했다. 북한군 함정임이 분명했다.

25일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국방부에서 “공산군 함정으로 판단되면 사격하라”는 사격 허가가 떨어졌고 26일 0시10분 해군본부로부터 정식 사격 명령이 하달됐다. 승조원들은 주포인 3인치 포탄을 장전하고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함장의 명령에 의해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다. 북한 수송선도 85mm 주포와 기관총으로 응사해 왔다. 백두산함은 속력으로 적의 조준 사격을 피하며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적 수송선 좌현 가까이 접근했다. 이어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자 북한 수송선에서 불꽃이 튀며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연속 발사한 포탄이 명중하면서 적함은 오전 1시10분쯤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 대한해협 해전은 규모는 작지만 의미가 큰 해전이었다. 북한 수송선에는 북한 게릴라들과 육전대(해병대) 병력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수송선을 격침하지 못했다면 개전 초부터 후방 지역은 큰 혼란에 빠져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중요한 공을 세운 해군 백두산함은 도입 사연부터 평범하지 않은 군함이었다. 창군 초기 해군은 함정 부족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창군 초기의 해군은 상륙용 함정·소해용 함정이 아닌 수상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정규 전투 함정은 단 한 척도 없었다.

결국 해군참모총장 손원일(孫元一) 제독은 1949년 6월 참모총장으로부터 말단 수병에 이르기까지 전투용 함정을 구입하기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을 벌였고, 성금 1만8000달러로 49년 10월7일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해양학교 실습선 ‘화이트헤드 소위‘(Ensign Whitehead)호를 구입했다.

49년 12월24일 미국 롱아일랜드 서쪽 해안에서 화이트헤드 소위호의 수리를 마치고 백두산함이라고 명명했다. 백두산함은 50년 1월24일 하와이의 호놀룰루항에 도착, 3인치 주포를 장착했다. 진해 기지에 백두산함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50년 4월10일. 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두 달 전이었다.

백두산함, 다시 말해 화이트헤드 소위호는 450톤급 내외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연안 초계정(PC-461 Class)이었다.

백두산함은 현재 7000톤급 내외의 대형 구축함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요즈음 고속정과 비슷한 크기의 작은 배였지만 우리 해군사에 그 어떤 군함보다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2. 6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4-12-06 18:48:06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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