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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닝 자동소총


1952년 12월 경기도 파주의 노리고지. 육군전진육탄부대 10중대가 고지 점령 작전에 나섰다. 적의 저항은 완강했고 아군 소대장들이 모두 전사하는 등 피해는 늘어만 갔다. 아군 잔존 병력들은 7부 능선에서 마냥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고지 점령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그 순간 엎드려 있던 10중대의 박관욱 일병이 총을 들고 홀로 벌떡 일어섰다. 힘차게 고지를 향해 올라간 박일병은 고지의 중공군을 향해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고지의 중공군들은 당황해 제대로 대응을 못했으나 인접 고지의 또 다른 적들이 박일병에게 기관총을 사격했다. 적탄에 맞아 쓰러진 것처럼 보였던 박일병은 얼마 후 또다시 일어나 탄창 두 개를 교환해 가며 적에게 사격을 퍼부었다. 대대 관측소에서 상황을 살피던 아군은 박일병의 놀라운 행동을 넋을 잃고 지켜보고 있었다.

박일병이 그렇게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사격하기를 여러 번. 대대 관측소에서 작전 상황을 시찰하던 미1군단장 캔달 장군은 안절부절못하며 박일병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군은 “군대 생활 30여 년에 저렇게 용감한 사람은 처음 본다”며 “저 병사는 초인”이라고 찬탄했다.

‘노리고지의 불사신’이라고 칭할 만한 박일병이 이때 휴대했던 총이 바로 M1918 브라우닝 자동 소총(Browning Automatic Rifle·BAR)이었다. 박일병의 행동은 전적으로 그의 용감한 군인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자동 사격이 가능한 BAR를 휴대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과감히 행동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대부분 소총에서 자동 사격이 가능하지만 그때만 해도 자동 사격이 가능한 총기는 희귀했다. 당시 한국군 소총분대급 무기 중에 M1 소총과 카빈 소총은 반자동 사격만 가능했다. BAR는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했던 유일한 분대급 화기였던 것.

BAR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개발, 1918년에 제식화됐다. 미국은 당시 가볍게 운반 가능한 적절한 기관총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은 참호전에 적합한 총(trench rifle)이나 혹은 가벼운 무게의 경기관총을 개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과 개발된 것 중 하나가 바로 BAR였다.

자동 소총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대에 분대급에서 자동 사격을 지원했다는 점이 BAR의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또 BAR는 주력 제식 소총인 M1 소총과 동일한 탄환을 사용, 탄환 공급에 융통성이 있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물론 BAR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BAR는 탄창을 사용, 20여 발 사격이 가능했지만 기관총처럼 지속적인 사격은 불가능했다. 기관총과는 달리 총열 교환도 쉽지 않았고 탄띠를 사용한 사격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BAR가 소총으로 적합한 무기라고도 할 수 없었다. 무게 8.7kg 길이 121cm인 BAR는 소총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길었다. 더구나 BAR에 사용하는 7.62mm 30 - 06탄은 자동으로 사격하기에는 반동이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BAR는 지상에 거치해서 ‘엎드려 쏴’ 자세로 사격할 수 있을 뿐 그 이후에 나온 M16 자동 소총처럼 손으로 들고 사격하기에는 반동이 너무 강했다. 결국 BAR를 손으로 들고 사격할 때 사용하는 ‘구부려 쏴’ 자세(사진)에서는 반동을 줄이기 위해 멜빵을 어깨에 걸쳐야만 했다.

한국은 6·25전쟁 이전에 미군으로부터 1324정을 인수했으며 전쟁 중 1만6139정을 추가로 인수, 베트남 전쟁 시절까지 육군 소총분대의 지원 화기로 활용했다. 그 이후 새로운 개념의 자동 소총인 M - 16 소총이 군에 도입되면서 점차 퇴역하기 시작, 83년을 기점으로 현역 부대에서 사라졌다.

BAR는 경기관총도 아니고 현대의 자동 소총과도 개념이 다른 중간적 성격의 무기였다. 바로 그 점이 장점이기도 했고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BAR는 장단점을 동시에 가진 무기였지만 노리고지의 박일병 사례에서 보듯이 6·25전쟁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보병 전투의 최일선에서 수많은 신화를 창조한 무기였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1. 22 >

2004-11-22 18:19:38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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